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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을 왜 서안(西安)이라 부를까

by 청죽소헌 2023. 9. 8.

우리가 서울 하면 수도 서울을 의미하듯 중국인도 수도하면 장안을 떠올립니다

그만큼 장안이라는 명칭이 가진 역사성이 특별합니다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널리 알려진 국제도시였습니다

최 전성기 장안은 100만 명의 인구가 살았을 만큼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거기다 장안을 오고 가는 외국인들과 무역상까지 더하면 도시가 부양해야 할 인구규모는 100만 명이 훌쩍 넘었을 것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관중에서 생산되는 소출량으로 장안성을 부양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남에서 생산되는 곡물을 대운하를 통해 수송한 후 동도인 낙양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역사적 수도로 인식되던 장안은 언제부터 서안으로 불렀을까요?

 

장안의 역사

장안이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주나라의 첫 도읍지였던 풍읍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주 무왕은 상나라를 멸망시킨 후 풍읍맞은편에 있던 호 땅에 성곽도시를 건설해 수도로 삼았습니다

역사에서는 호경이라 부르는 곳이죠

호경은 유왕때 서융의 침입을 받아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주나라는 어쩔 수 없이 낙읍으로 천도해 서주시대를 맞이하죠

진나라 때 호경 서쪽에 함양이 건설되어 수도로서 명맥을 어어갑니다

함양은 진나라 말 반란군에 의해 도시가 불타버리죠

진 멸망 후 초한쟁패 기를 통해 패권을 차지한 유방은 함양 근교에 새로운 도성을 건설하고 장안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혜제때는 성벽이 건축되어 장안성이 완공되었죠

이후 장안성은 전조 전진 후진 서위 북주가 계속해서 수도로 삼았습니다

북주를 멸하고 수 왕조를 세운 양경은 그동안 수도역할을 하던 장안성을 버리고 교외에 있던 용수원에 새로운 도성을 세워 대흥성이라 이름 붙입니다

이 대흥성이 바로 당나라 때 전성기를 누렸던 장안성이죠

그러나 주전충이 당 소종을 핍박해 낙양으로 천도한 후 장안성은 다시 파괴된 후 버려집니다

이후 절도사인 한건이 당나라 황성을 기초해 장안성을 다시 재건하는데 그 면적은 당나라 장안성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축소판 장안성이 탄생한 것인데 이를 장안고도라 불렀습니다

옛 수도라는 의미죠

송나라와 원나라 때 장안성은 특별한 기능을 담당하지 못합니다

원나라 때는 장안성을 봉원성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합니다

서안으로 개명

원나라 말 농민반란이 발생해 황건적을 이끌던 주원장이 몽골족을 내몰고 명나라를 설립하죠

당시 봉원성에 살던 사람들은 이미 농민반란군들에게 씨몰살을 당한 후였죠

그런데 신생국 명나라는 북방 이민족에 대한 경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장안고도는 서북을 안정시킬 전략적 요충지로 다시 급부상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아들 주상을 진왕으로 봉해 관중을 통치하고 합니다

이와 함께 대도독부에 예속된 서안도위를 설치한 후 봉원이라는 이름을 서안으로 개명합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홍무 2년 북벌군이 관중을 점령했다 

그해 삼월 주원장은 정식으로 조서를 내려 천년고도인 장안을 서안이라는 새 이름을 부여한다고 칙령을 내립니다

장안을 대신해 서안이라는 명칭은 명나라 때 등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