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기원전 4세기경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연나라와 갈등이 발생했으나 외교적으로 화친하며 원만히 해결되었습니다
이후 조선과 연나라 사이에는 약 50여 년간 별다른 갈등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3세기경 연나라와 제나라의 갈등에 전국칠웅 나머지 국가들이 끼어들면서 국제정세에 큰 변화가 발생합니다
연나라가 제나라를 굴복시키고 조선을 공격하는데요
조선의 운명이 걸린 연나라와의 전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연나라 전성기를 맞다
기원전 4세기말 연 소왕이 즉위할 무렵 연나라는 제나라의 속국이었습니다
연 소왕은 제위기간 내내 제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절치부심하는데요
제나라가 너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한 칠웅 나머지 국가들이 외교적으로 제나라를 압박하는 술수를 부립니다
덕분에 준비할 시간을 번 연 소왕은 기원전 285년 마침내 제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연나라 장국 악의는 제나라를 기습해 수도 임치를 함락시키고 제나라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당시 제나라는 두 개 성만 남아 버티기로 일관하며 거의 멸망직전의 상황에 몰리죠
그러다 연나라에 변고가 발생합니다
연 소왕이 기원전 279년 사망해 버립니다
소왕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혜왕은 제나라의 계략에 빠져버립니다
소왕은 장군 악의가 왕이 되고자 한다는 소문을 믿고 악의를 죽여버릴 술수를 부립니다
그러자 제나라를 공격하고 있던 악의는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로 망명해 버립니다
결국 연나라는 마지막 한수를 두지 못하고 제나라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죠
제나라를 멸망직전까지 몰아붙이던 약 10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 연나라의 전성기였습니다
사서에 기록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전쟁
연나라가 전성기를 맞은 동안 조선과 연나라 사이에 발생한 전쟁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기와 위략에 남아 있는데요
사기 흉노열전
연나라 명장 진개가 흉노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그들의 신뢰를 받았다
연나라로 돌아온 진개는 군대를 이끌도 동호를 습격해 패주 시켰다
이때 동호는 1천 리를 후퇴했다
연나라는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고 상곡, 어영, 우북평, 요서, 요동의 여러군을 두어 오랑캐를 방어했다
사기 조선열전
연나라의 전성기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위략
연나라는 장군 진개를 파견하여 동쪽 지방을 침공하여 땅 2천 리를 빼앗고 만번한을 경계로 삼았다
사기와 위략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종합해 보면 조선은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크게 패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조선과 연나라가 언제 전쟁을 치렀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연도가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인데요
사기에 기록된 연의 전성기를 통해 연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던 3세기초로 추정할 뿐입니다
만번한은 어디인가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만번한은 요동군에 속하는 문현과 번한현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는 중국한테 뭘 받아먹었는지 만번한을 청천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천강 이북에 존재하던 세죽리 연화보 유적은 분명한 조선의 유적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명도전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조선의 유적을 연나라의 유적으로 둔갑시키는 파렴치한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러 왔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결과로 조선의 중심지가 북한땅 평양으로 쫓겨났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부학자들은 진번을 복속시켰다는 기록을 들어 황해도까지 연나라가 차지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유분수지 전부 이완용과 같은 매국노들입니다
연나라는 요동을 차지한 적이 없습니다
요서지역을 빼앗긴 것뿐입니다
거기다 연나라는 곧바로 제나라의 반격을 당해 요서를 경략할 능력까지 상실합니다
이 모든 결과는 사마천을 위시한 한나라때 역사가들이 조선의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또한 중국의 하수인들이 한국역사학계를 주물럭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조선을 일시적으로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긴 했으나 요서지역 대릉하 일대만 해당됩니다
진개가 죽은 후 연나라는 요서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으며 다시 조선이 차지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