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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석유 이야기 (9) 펜실베니아로 몰려드는 오일러시

by 청죽소헌 2023. 9. 18.

세계 석유산업은 루마니아에서 시작되었지만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계기로 몰락해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유산업을 크게 부흥시키는 데 있어 루마니아가 가진 파급력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루마니아보다 2년 늦게 석유를 채굴했지만 석유산업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미국이야말로 석유산업의 산증인이자 역사 그 자체입니다

펜실베니아 석유생산 시가지 - 피트홀

 

석유가 생산되기 전 등화용 기름

석유가 생산되기 전 등화용으로 사용되었던 원료는 고래기름이 1 등품이었으며 식물성 기름과 송진이 그다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래기름은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수요가 많았지만 먼바다로 나가 잡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미국 소설가 하먼 멜빌의 모비딕이 나온 시기도 1851년이었습니다

1853년 페리제독이 일본의 개항을 요구할 때도 미국 포경선이 일본 항구에 기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랐습니다

그마만큼 등화용 연료로 고래기름이 인기 있었다는 방증인데요

당시 고래기름의 가격은 1갤런당 2.5달러로 매우 높았습니다

송진에서 추출한 기름은 고래기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했으나 그을음이 많았기 때문에 실내에서 사용하기 불편했습니다

식물성 기름은 가격이 가장 저렴했으나 품질이 떨어졌죠

석탄에서 기름을 추출할 수 있었으나 가격이 가장 비싸 가성비가 별로였습니다

수요는 많은데 소비자의 욕구를 딱 맞춰줄 등화용 연료가 필요할 때 타이터스빌에서 석유가 터진 것입니다

조지비셀과 에드윈 드레이크가 생산한 석유는 이런 문제들을 말끔히 해결했습니다

게다가 펜실베니아의 석유는 미국 동부의 대도시들이 전부 등잔에 불을 밝힐 만큼 충분한 양이 생산되었지요

펜실베니아로 모여드는 석유자본

비셀과 드레이크가 큰 성공을 거두자 뉴욕의 금융자본이 펜실베니아로 향합니다

석유로 한몫 벌자는 기대심리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자본을 부추겼으며 펜실베니아의 한적한 시골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1860년 타이터스빌 75개의 유정에서 불을 뿜었는데 하루생산규모가 3,000배럴에 달할 만큼 엄청났습니다

유정이 추가로 발견되자 미국의 석유생산량은 1860년 년간 45만 배럴에서 1862년 200만 배럴로 늘어났어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자 가격이 급락합니다

1980년 배럴당 10달러였던 석유가격이 1982년에는 베럴당 10센트에 불과할 정도로 폭락했습니다

미국의 모든 가정이 석유를 등화용 연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배럴의 등장

펜실베니아에서 석유가 터진 타이터스빌은 산악지대였기 때문이 동부 대도시로 운송이 쉽지 않았습니다

땟목에 실어 수송할 용기가 필요했는데 만만한 게 술통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은 술통을 배럴이라 불렀는데 많은 양을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크로 만들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용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술통을 구해와 석유를 담았기 때문이 기준이 없었습니다

어떤 것은 와인 술통이었으며 어떤 것은 위스키 술통이었는데 크기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죠

소비자들의 불만이 쏟아집니다

술통에 담긴 석유 양도 차이가 났으며 술통의 크기가 제각각이라 창고에 높이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석유 공급자는 기준을 통일하라는 소비자 요구를 결국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펜실베니아 석유개발업자들은 42갤런짜리 와인술통에 석유를 담아 수송하기로 합의를 이룹니다

42갤런짜리 와인 술통이 배럴이라는 석유 기준단위로 등장한 배경이죠

 

뉴욕 월가의 성장

펜실베니아의 오일러시는 뉴욕 월가의 금융 투기자본과 결합되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뉴욕에는 석유를 취급하는 도매상들이 급증해 사무실과 창고가 등이 날 정도였습니다

석유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런던의 금융자본까지 월가를 기웃거립니다

월가의 금융자본은 눈덩이가 굴러가듯 엄청난 규모로 성장합니다

월가의 금융가중 펜실베니아 석유에 투자해 큰돈을 벌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인데요

1881년 당선되어 취임 6개월 만에 암살당합니다

석유를 둘러싼 이권싸움의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유조선의 등장

석유는 미국인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해가지면 잠자리에 들던 사람들이 저렴한 등유를 구입해 밤늦도록 등불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석유는 유럽으로 수출되기 시작합니다

1860년 11월 필라델피아항을 출발한 엘리자베스 와츠호는 1.329배럴의 등유를 싣고 이듬해 1월 런던에 도착합니다

이 배는 오크로 만든 배럴통에 석유를 담아 운반했는데요

이를 본 스웨덴 기업인 알프레드 노벨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깁니다

석유를 전문적으로 수송할 유조선을 건조한 것인데요

1878년 세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터호가 석유를 싣고 대서양을 횡단하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