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석유이야기 (4) 역사적으로 국제유가는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by 청죽소헌 2023. 8. 15.

유가는 석유라는 상품이 거래되는 가격이죠

통상 석유는 서부텍사스유, 브렌트유,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가격이 정해집니다

자유시장경제하에서 상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결정되죠

그런데 석유는 현대사회를 지탱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전략물자로 취급됩니다

현대에 들어 벌어진 대부분의 전쟁은 영토나 식량문제보다 석유패권문제로 일어났죠

그렇기 때문에 세계 경제는 석유가격변동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따라서 유가는 수요와 공급뿐만 아니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작동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석유는 과연 어떠할까요?

 

메이저는 누구인가

석유 없이 전쟁을 치르는 것은 패전의 지름길임을 증명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은 아주 묘한 선택을 합니다

석유를 두고 경쟁하던 관계에서 협력관계로 전환한 것이죠

7대 메이저 석유회사인 엑손, 모빌, 걸프, 텍사코, 세브런, 로열더치셀, 브리티시석유는 모두 미국과 영국이 세계 석유시장을 재패하기 위해  만든 회사입니다

메이저라 불리는 석유회사들이 전 세계 석유의 채굴과 정유, 유통, 가격결정이라는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죠

브레튼 우즈 시스템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 발생하자 강대국들은 자국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금본위제라는 국제무역질서를 스스로 깨뜨려 버립니다

그런데 별의별 수를 다 써봐도 경제적 빈곤에서 탈출하기 어렵자 결국 식민지 수탈이라는 약탈경제를 통해 해법을 찾았죠

땅덩이는 한정되어 있는데 약탈자들이 많아지자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전쟁이 터집니다

그런데 식민지 경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가 있었는데 자원이 빵빵한 미국이었죠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은 세계 44개국을 브레튼우즈로 불러 국제통화제도를 다시 협정합니다

금본위제를 환원하되 미국의 통화인 달러를 금에 연동시켜 기축통화로 하자는 게 협정의 핵심이었죠

2차 대전의 최대 승전국이자 어마어마한 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미국을 본 세계 각국은 입이 떡 벌어졌죠

결국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연동시키는 브레튼 우즈라는 국제무역질서가 출범하게 됩니다

또한 미국은 각국에 달러를 공급하는 국제통화기금과, 전후 부흥과 후진국 개발을 빌미로 국제부흥개발은행을 설립해 전 세계의 유일한 패권국임을 증명합니다

그런데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서구권에 비해 미국경제는 정체해 있다 보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누적된 국제수지 적자가 금 보유량을 넘어서며 대외단기 달러채무잔고의 비율이 악화된 것이죠

그러자 미국은 부족한 달러채무잔고를 맞추기 위해 달러를 찍어 세계시장에 공급하자 달러가치가 하락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려 버립니다

1970년대 들어 상황은 더 악화되는데요

메이저가 장악하고 있던 생산량, 분배, 가격결정등 국제석유에 대한 통제권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중동 산유국을 중심으로 결성한 카르텔이 힘을 쓰기 시작하면서 중동산 원유에 대한 가격 통제권이 OPEX에 넘어가 버리죠

최악의 상황에 몰린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기 시작하는데요

닉슨대통령은 일방적으로 금태환을 거부하고 브레튼 우즈협정을 깨버립니다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기 싫었지만 달러의 패권은 유지하기를 바랐죠

그런 에 이게 왜 사기냐 하면 가치가 전혀 없는 종이때기로 만든 달러를 기준으로 각국의 통화 교환비율이 결정되는 환율변동제는 실체가 없다는 데 있었죠

꼼수의 달인 미국은 또다시 국면전화를 시도하는데요

금과 연동시켰던 달러를 석유와 연동시키는 오일달러시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죠

중동 산유국증 미국과 이해관계가 일치한 사우디를 끌어드려 원유를 달러로 결제하는 조약을 체결합니다

달러 패권을 유지하고 OPEC을 분열시킬 목적으로 수작질을 벌인 것이죠

그러자 이에 반발한 이라크 리비아 이란등 OPEC회원국은 달러결제를 거부하고 감산과 가격인상이라는 초강수를 두는데요

결국 오일쇼크라는 경제위기로 전환되며 미국과  OPEC 간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 시작됩니다

현물에서 선물로 

OPEC은 메이저의 일방적인 공시가격 변동을 억제하기 위해 고정 공시가격제도를 도입하고 회원국을 추가로 늘려 카르텔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하는데요

OPEC이 결성된 1960년대부터 꾸준히 석유 국유화 작업을 추진한 중동 산유국은 1970년대 들어 메이저를 밀어내고 완전한 국유화를 달성합니다

세계 석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확보한 OPEC이 가격결정에 대한 주도권을 차지하며 기세를 올리죠

그러자 미국을 등에 업은 메이저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1차 오일쇼크로 충격을 받은 메이저석유회사는 새로운 유전을 찾아 생산량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위해 전 세계를 훑고 다녔는데요

이때 북해유전과 알래스카 유전이 개발됩니다

생산량에서 OPEC을 앞서게 된 메이저와 OPEC이 치열한 석유전쟁을 벌이고 있었죠

그러던 중 1979년 친미정책을 고수해 온 이란의 팔레비왕이 호메이니를 주축으로 한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축출되는 혁명이 발생하며 석유수출을 전면 중단시킵니다

이란과 이라크는 전쟁을 벌이죠

2차 오일쇼크가 시작되며 세계 경제는 다시 끔찍한 직격탄을 맞습니다

불황에 직면한 석유수입국들은 OPEC이 미울 수밖에 없었죠

미국은 석유를 국유화한 OPEC의 강력한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며 OPEC이란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데요

먼저 미국과 영국은 금융거래시스템을 통해 석유 현물거래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파동을 겪은 석유 수입국들은 쾌재를 불렀죠

OPEC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모두 금융거래시스템에 합류합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미국은 1983년 뉴욕증권거래소를 통해 석유라는 현물을 선물이라는 금융상품으로 대체해 현물로 거래되던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석유는 생산되는 국가는 한정되어 있지만 소비하는 국가는 많기 때문에 운송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존재하죠

장기간 운송이 필요한 시간적 차이를 선물이라는 금융상품으로 돌파를 시도한 것입니다

가격과 수요를 예측해 미리 선물거래로 주문한다면 3개월 뒤에 인도받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변동리스크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의 넓어졌죠

OPEC이 좋아하는 직거래 시스템을 우회한 선물거래는 석유 수입국가들로부터 선택을 받아 빠르게 대세를 장악했는데요

서부 텍사스유가 국제유가를 결정하는데 바로미터로 우뚝 섭니다

그러자 영국도 런던 금융시장에 북해산 브렌트유를 선물상품으로 론칭시키는데요

미국과 유럽에 들어오는 모든 석유는 서부텍사스유와 브렌트유 선물가격으로 결정되는 시스템이 정착합니다

하루 거래량만 보더라도 OPEC이 직거래한 현물거래량보다 10배 많은 물량이 선물을 통해 거래됩니다

83년을 깃점으로 OPEC과 메이저가 결정하던 석유가격의 결정권이 금융시장으로 완전히 체인지되며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원칙이 작동되기 시작합니다

석유가격 금융시스템에서 결정되다

석유가격 결정권이 선물이라는 금융시스템으로 체인지되자 OPEC은 자중지란에 빠집니다

가격결정에 참여할 수 없고 오직 생산량을 조정해 시장을 압박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매장량도 다르고 생산캐퍼도 차이가 있는 데다가 당장 수출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 회원국의 입장이 각기 달랐습니다

중동산 유국 중심으로 형성된 카르텔은 순식간에 약점을 노출합니다

석유소비국들은 입맛에 맞는 단골 거래처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죠

동북아시아에 수출이 많은 중동 산유국은 싱가포르 증권거래소를 통해 현물거래를 조건으로 금융시스템에 합류하는데요

두바이유가 국제석유가격을 결정하는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서부텍사스유, 브렌트유, 두바이유가 금융거래를 통해 국제표준가격을 형성하게 된 배경이죠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수요와 공급이라는 거래의 두 축이 금융시장을 통해 안정을 찾았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속사정은 오일달러와 금융시장을 장악한 미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후속이야기는 계속 연재하면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