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에서 발생한 전투 중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규모가 상당히 컸던 전투가 할힌골 전투다.
또 혹자들은 이 전투를 2차 세계대전중 발생한 전투로 얘기하지만 실제는 이와 무관한 전투다.
왜냐하면 2차세계대전은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관점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할힌골 전투는 1939년 5월 시작되어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던 동년 9월경 소련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할힌골 전투란
할힌골 전투는 동북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열강들의 패권다툼 속에 발생한 소련과 일본의 국경전쟁의 일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중일전쟁을 일으켜 이미 만주를 점령한 상태였다
사건은 1932년 만주국 설립 시 일본 관동군이 괴뢰국 만주국과 소련의 위성국 몽골의 국경을 할 하강으로 정하면서 시작되었다
소련 볼세비키정권이 적백내전으로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일본은 7만 명의 병력을 파병해 바이칼을 점령한 바 있기 때문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한 후 관동군을 크게 확장하였으며 이에 질세라 소련도 극동군을 증강해 소규모 전투가 국경 근처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그러다 1937년 볼세비키의 수장이 된 스탈린이 대숙청을 단행하며 극동군 사령부가 처형됨에 따라 일본이 소련의 군세를 과소평가하면서 전투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건차차도 사건
간차차도는 아무르강에 위치한 하중도로 청나라와 러시아가 맺은 아이훈 조약과 베이징 조약의 결과에 따라 러시아의 영토였으며 이를 승계한 소련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약 체결 후 7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건차차도 남쪽에 흐르던 아무르강 수로가 북쪽으로 바뀌는 묘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러자 만주국은 자국의 배가 다니는 항로가 아무르강이라며 건차차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만주국 신민을 이주시켜 황무지를 개간하게 합니다
갈등이 악화되자 관동군 제1사단 49 연대와 소련 극동군이 건차차도에 상륙해 대치하게 되는데요
1937년 주둔군 사이에 우발적인 전투가 벌어져 소련군 37명이 사망하면서 전운이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하산호 전투
하산호는 두만강 북쪽에 인접한 국경지로 사초봉 장군봉 장고봉이라는 세 개의 봉우리 아래에 형성된 호수입니다
그런데 그 위치가 소련과 만주국 그리고 조선사이에 절묘하게 걸쳐있으며 고도가 주변보다 높은 고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전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일본 관동군은 세 개의 봉우리가 감싼 지역을 조선인으로 구성된 제19사단을 파견하여 관할하고 있었죠
그런데 소련이 세개의 봉우리 중 장고봉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자 정찰대를 파견했는데 이들이 소련군에게 공격을 받습니다
그러자 관동군 지휘부는 1938년 7월 29일 19사단을 동원해 장고봉일대를 점령하기 위해 공격에 나섰는데요
장고봉 사초봉일대에 진지를 구축한 소련군과 공방일퇴를 거듭하다 결국 승리를 거둡니다
8월 1일 소련 극동사령관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면서 갑자기 판이 커지는데요
연해주 항공대의 폭격을 시작으로 1개 군단과 1개 기계화 여단을 동원해 대 반격을 시작되자 조선군 19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전멸위기에 처합니다
결국 일본 관동군은 소련과 휴전을 제의하고 협상을 진행해 장고봉일대를 소련에게 내주고 정전이 발효됩니다
할인골 (노몬한) 전투
기회를 엿보던 관동군은 국경선이 불명확한 몽골지역 할하일대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1939년 5월 전병력을 동원해 소련의 위성국 몽골군을 공격합니다
방어에 유리한 노몬한 언덕을 차지하고 소련 극동군을 몽골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술수를 부린 것이죠
소련 극동군이 참여한 1차 전투에서 일본군은 패배하는데요
전투에서 승리한 극동사령관 페클렌코는 모스크바에서 훈장을 받았으며 새로운 극동사령관이 부임하는데요
후일 독소전쟁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주코프가 등장합니다
주코프는 일본 관동군의 침략의도가 시베리아를 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1개 차량 보병사단, 2개 보병사단, 1개 차량여단, 2개 기갑여단, 4개 포병연대, 2개 항공여단을 투입해 병력을 크게 증강시킵니다
그러자 일본도 아무르강 전선에 기존의 23사단과 2개의 전차연대, 정예병인 제7사단을 추가 배치하여 대대적인 설욕전을 준비하는데요
6월 27일 항공기 107대를 동원하여 소련 항공기지를 급습하고 정예병인 7사단과 함께 대대적인 반격에 나섭니다
그러나 화력과 병력수에서 크게 밀린 관동군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국민당과의 전쟁 때문에 추가병력을 지원받지 못하죠
8월 20일 주코프는 5만명의 병력과 500여 대의 항공기를 동원해 포위공격하자 일본군 23사단은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거의 전멸합니다
이후 정전협정이 체결돠면서 할하강 일대는 몽골에게 내주며 소련과 일본은 불가침 조약을 맺게 되었죠
그런데 소련과 일본이 맺은 불가침 조약은 결국 독일의 대소련전선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일본과 동맹을 맺은 독일은 소련에 대대적인 공격에 나서면서 극동을 공격해 달라고 일본에 여러 번 요청하는데요
일본은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을 핑계로 독일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결국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결국 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될 수 있었죠
또한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할인골 전투의 패배로 말도 꺼낼 수 없는 처지로 내쳐집니다.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8월 소련은 만주국을 침공하여 멸망시키며 관동군역시 소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