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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방(壻房)님, 서방(西房)님, 서방(書房)님에 대한 단상

by 청죽소헌 2023. 8. 29.

우리는 지나간 시대를 모두 과거라 부르지만 고구려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 그 시대는 과거가 아닌 현재입니다

과거란 말은 상대적 개념이라는 얘기죠

과거든 현재든 사람이 사는 세상임은 변함없지만 시대마다 풍속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풍속도 그러한데 서방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며 변해가는 말이 서방인 듯합니다

고구려인 부부가 식사하는 모습 (각저총 묘주부부도)

 

모계중심 사회의 흔적인 서방(壻房)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전에 따르면

고구려 사람들은 말로써 혼약이 정해지면 처가에서 본채 뒤에 작은 별채를 짓는데 이를 사위집(壻房)이라 하였다

해가 저물 무렵 남편이 처가 대문 밖에 와서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고  꿇어앉아 절하며 아내와 동침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

이렇게 두세 번 청하면 아내의 부모가 별채인 사위집에 들어가 자도록 허락한다

남편은 자신의 노력으로 사위집에 돈과 옷감을 쌓아야 한다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남편집으로 돌아간다

인구가 부족하던 시절 남자가 여성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을 해야 합니다

처가에서 반쯤은 머슴생활을 한 후에야 아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소중한 인적자원인 딸을 머슴하나 얻자고 쉬히 내보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위집은 처가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입니다

남자가 아내를 얻는 일은 아주 힘들었다는 얘깁니다

결혼을 약속한 후 아이를 낳고 기르기까지 남편이 아내의 집에 머무는 관습은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 가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삼국사기 가야전에는 남편의 직설적 표현인 사위방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부터 전해 내려온 모계사회의 흔적이죠

우리말 중 남편을 얻는 서방 맞다의 서방은 고구려시대 사위방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또 다른 혼인전통 형사취수혼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따르면

고국천왕이 죽자 그의 아내인 우 씨가 왕의 죽음을 숨기고 왕의 동생인 발기와 연우를 차례라 찾아가 왕위를 이을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다

발기는 거절했지만 연우는 예를 갖추고 형수인 우 씨를 맞이하였다

이 사람이 산상왕이다

산상왕은 형수인 우 씨를 황후로 삼았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형사취수혼은 고구려와 부여에서 행해졌음이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사위집에 머물며 자기를 희생한 대가로 소중한 인적자원인 아내를 얻었기 때문에 쉬이 보내줄 수는 없었겠죠

결혼한 시동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 서방님의 서방도 고구려와 부여에서 유래된 전통입니다

 

음양오행의 시대 서방(西房)

우리말에 서방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쪽으로 장가간다는 말이죠

우리말에 동쪽에서 온 사위를 뜻하는 동상이란 말과 서쪽에서 처가살이하는 사위를 뜻하는 서방재라는 말도 있습니다

혼례식이 끝난 뒤 신랑이 신부집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동상례라고 하죠

방향을 내포하는 서방과 동방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왕희지의 기록물에서 입니다

지금도 산동지역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처가살이하던 모계사회의 흔적이 음양오행설과 결합되면서 방향개념인 서방과 동상으로 나타난 것이죠

서방 가다는 음양오행사상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사대부의 시대 서방(書房)

우리말 대사전을 보면 서방을 글방과 같은 의미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범례에는 남편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 설명되어 있으며 벼슬 없는 선비를 얕잡아 부르는 말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혼하게 될 남편이 늘 글방에 않자 글을 읽던 것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출사 하지 못한 글방서생 즉, 비루한 남편이 서방이란 얘기죠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를 만든 성리학적 관점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말 서방님은 출사 하지 못한 글방서생 서방을 높여 부른 말입니다

혼인을 하지 않는 글방서생은 도련님이고요

남편이 있는 여자가 새서방을 보는 것을 서방질로 표현한 것은 해학의 극치입니다